[Episode] 공항에서 벌어진 일




신이 겪었던 공항 또는 비행기와 관련된 최악의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최최최악의 사건들이 겹쳤던

2006년 12월의 기억을 말해주고 싶다. 벌써부터 눈에 가습기를 설치한 것도 아닌데 축축해 진다.

때는 2006년 12월 25일 저녁. 연말에 태국으로의 여행을 위해 아껴둔 연차를 한꺼번에 질러버리고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저 밑에 여행기에도 언급되지만 이번 여행에는 동행 W군이 함께 했다. 당시

W군은 회사 면접을 열심히 보러 다니던 상황이었고, 몇군데 회사로 부터 최종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초저가 항공인 OX라는 무시무시한(방콕행 타고 가다가 비행기 엔진에 불이 붙는것을

이때 처음 목격, 하지만 처음 본 거라서 원래 저런거야 하면서 W군을 진정시킴. 그래도 어쨌든 무사 도착)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향한 우리는 5일이라는 시간을 나름 의미있게 보내고 있었다. (남자둘이? 의미있게?)

돌아오는 비행 스케쥴을 대충 훑어보니 25일을 여유있게 보내고 난 뒤 다음 날 오후 1시까지 공항에

슬슬 나가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고는 26일 아침에 일어나 여유있게 호화스런 아침과 마무리 발맛사지

그리고 얼마의 쇼핑을 하고는 공항으로 나갔다.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해서 전광판을 계속 보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가 탈 비행기가 없는 것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라면 티켓을 들고 카운터에 갔는데 아리따운 태국

아가씨가 우리 티켓을 보여주며....


"니들 비행기 벌써 갔는데 새벽 1시에..."


머리속이 하얗게 변한다는 말이 이럴때 쓰는 것이구나... 라며 W군과 그 자리에서 넋이 나간 사람마냥 서 있었다.

우린 진정 바보였던 것인가? 왜 26일 01:30 이라는 출발시간을 오후로 본 것인가?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환불, 변경이 전혀 안되는 티켓이라 그냥 그 티켓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한다. 그말을

듣고 아가씨한테 진상을 부리기엔 시간 잘못보고 비행기 놓친 우리가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제길슨... 우린 진정한 덤 & 더머였나??


난 다음날 아침부터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W군도 최종 면접 결과를 이메일로 통보받고 연봉협상을

며칠앞에 두고 있었던 차였다. 그랬기에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둘다 패닉상태로 공항 의자에 힘을 쭈욱 빼고 앉아 있다가 뭔가 대책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에 공항에 있는

항공사 카운터로 직접가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비행편을 물색해봤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타이 항공만이

몇시간 후에 비행노선이 있었고 공항에서 직접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을 알아보니 우리가 타고온

OX 왕복 항공권 가격보다 훨씬 비싼 것이었다. 그것도 편도 항공권 주제에...

그래도 어쩌겠냐?? 회사 책상 빠지는 것보다는 나을것 같다고 생각해 신용카드로 결제할 생각을 가지고

항공사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W군이 던지는 한마디


"나 신용 카드 없는데..."


한국을 떠나오기 전 인천 공항에서 내가 얼핏 W군에게 물어본 기억이 났다.

"신용카드 가지고 왔어? 혹시라도 비상금 필요할 땐 신용카드가 최고야... ㅎㅎㅎ"

그때 W군은 이렇게 말했던가?

"괜히 신용카드 가지고 갔다가 사기 당할까봐 그냥 집에 모셔두고 왔어."

"그으럼.... 뭐 서얼얼얼마 그런일이 있겠어"

정말 그런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_-;; 게다가 내 신용카드 한도로는 한사람 표값밖에는 구입할 수

없었기에 더욱 GG 스러운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오늘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도대체 어떻게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공항 의자에 앉아서 멍하게 있다가

우리 이러지 말고 다시 카오산으로 가자는 제안을 W군에게 하여 내 지갑속에 3년 넘게 묵고 있었던

여행자 수표 100달러를 환전했다. 그리고 귀국 못한다고 한국에 연락을 시도. 그런데 대만의 지진으로

국제 전화망 불통. 공항에서 카오산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냥 멍하게 웃음밖에 나오지 않더라.

버스안에서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컴백한 카오산 로드의 밤은 처음 느꼈던 설레임과 자유로움 보다는 막막함만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대략적인 상황에 대해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정리해 본 결과, 해외 송금서비스나 혹시나

카오산 거리의 한국 여행사를 통해 뭔가 방법이 나오지나 않을까하여 분주하게 알아본 결과 다행히

이틀 후 떠나는 가장 저렴한 항공편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항공권의 정체는 다름아닌 타이완에서

12시간 웨이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공편을 예약하고 나머지 이틀간을

난 미친척하고 카오산 로드를 방황했고, W군은 숙소 방안에서 12시간 이상씩 자면서 새롭게 받은 항공권을

100번도 더 본 거 같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우리가 떠날 시간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또 다시

실수하면 아마도 자괴감에 삶을 포기할지도 모를것만 같은 우울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떠나는 당일 공항까지 가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번 카오산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갈때 200바트에

쇼부치고 갔는데 그날은 주말이어서 그런지 택시들이 공항 간다면 모두 절레절레 그리고 간다는 택시는 교통

정체로 400바트 이상을 부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공항버스를 타려고 하는 찰나,

미국인 아저씨가 우리보고 세사람이면 그냥 택시 합승해서 가자고 제안하여 택시에 합승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공항까지 내려다주면서 거스름돈이 없다면서 우리가 가진 마지막 1000바트를 거슬러 줄 수 없다고

버팅기더라. 다행히 맘씨좋은 우리 미국인 아저씨는 나머지 금액까지 그냥 치뤄 주시고 빠이빠이~

이때 우리는 슬며시 예감했다.

"이거 이거 이제야 그동안 꼬였던 저주에서 벗어나는 건가??"

원래 중국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대만에서 운영하는 China Airlines 조차도 떨떠름하게 생각했는데 대만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대만족이었다. 비행기 좌석이 텅텅 비어 갔기 때문에 좌석도 마음대로, 기내식도 훌륭하고

더구나 승무원 아가씨들이 눈웃음 치는데 하앍하앍 호흡이 거칠어 지더라.

무사히 대만 공항에 착륙. 도착한 시간이 밤이어서 밖으로 나가기엔 무리라는 결론으로 그냥 공항에서 12시간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만 공항은 24시간 운영이 아니잖아. 저녁시간이 되니 사람들을 입국장 밖으로

내보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등떠밀려 입국장을 나서려는 찰나 우리의 W군이 그만 검역소에서 걸리고 말았다.

검역소 열감지 모니터에 다른 사람은 정상인데 W군만 얼굴이 뻘겋게 이글거리며 검역소를 통과하다가 그만

짐승처럼 검역소 사무실로 끌려갔다. 일행인 나도 그냥 두고 볼수만 없어 갑자기 짐승이 된 W군을 변호하려고

함께 사무실로 갔다. 직원이 하는 말...


"니들 태국에서 왔지?? 혹시 재래시장, 양계장이나

조류 기르는 곳 같은데 있었어??


W군 너 혹시 무릎이 욱신욱신 거리지 않아??

현기증 증세는??"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전날 밤 방에 있던 Fan을 밤새 켜놓고 자다가 우린 감기 몸살을 얻었고 공항 가기전에

W군 상태가 조금 걱정되어 해열, 두통약을 먹였다. 그리고는 좀 괜찮아지는가 싶었는데 약기운이 다 떨어진 것

같았다.

한데 귀가 붓글씨 쓰는 화선지 만큼 얇은 우리의 W군은 검역소 직원이 쳐 올라가는 체온을 보고는 말라리아나

뎅기열이 의심된다는 말에 얼굴이 먹물마냥 까맣게 변해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조류 독감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검역소 직원에 물음에 오해할 만한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로는 도저히 한국에 못갈거 같아 내가 따지고 들었다.

"W군은 조류독감 아니다. 단순 감기 몸살이다. 니들이 뭔데 진단을 내리냐. 의사 불러와라.

그리고 특급 호텔이 아니면 우리를 여기서 격리시킬 수 없다. 대사관에 연락해라."


소리를 버럭 지르니까 얘들도 할 수 없었던지 혈액 샘플만 채취하고 공항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한다. 이거 정말

우리 W군은 짐승 취급을 받게 되었구나. 어쨌든 샘플 채취를 당한 W군과 옆에서 안타깝게 지켜만 본 난 입국대를

빠져나왔다. 짐을 찾으려고 보니 여자 두분이 우리 짐을 앞에 놓고는 기다리고 있었다. 3개월 동안 중국 통해

실크로드 찍고 베트남 거쳐서 태국으로 내려오신 분들인데 그분들도 공항에서 12시간 대기하려고 나오던 차에

검역소에 끌려가는 우리를 보고 안타까워서 짐까지 보관해 주셨단다. 감사감사^^

대만 공항을 12시간 동안 점거할 일행이 생겼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슬슬 풀리더니 나도 W군과 비슷하게

열이 나더라. -_-;; 다행히 여행 오래 다니셨던 분들이라 상비약을 주셨는데 이름하야 한알만 먹으면 취해버린다는

중국제 묻지마 감기약!!!

벌써 외관 부터가 심상치 않다. 특히 저녁에 먹는 알약 색깔이 까만색이더라. 한알 먹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서 저기 동중국해에서 새우잡으며 평생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제발 인천 공항

검역소에는 걸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먹었다. 역시나 반응이 금방 오더라 30분후에 바로 시체모드.

대만 공항 출국장 2층의 의자는 팔걸이가 있어서 대략 불편하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하여 의자를 두개 붙여서 간신히 잠잘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ㅎㅎ

아침에 배시시 일어나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완전 노숙자, 부랑자 처럼 피해가더라. 당당히 화장실에서 도둑 샤워를

하고는 티켓 발권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China Airlines 카운터에 갔더니 완전 인형같은 아가씨가 상콤한 웃음을

지어주시며 우리 두사람 짐과 함께 보딩해주더라. 인형같은 아가씨 가슴팍에 수속 직원이란 펫말을 달았는데

얼마나 친절하게 해주시는지 하마터면 그분따라 대만에 눌러앉고 싶었다. (사진없으니 무효라고 하면 대략 골룸)

어쨌든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돌아주며 용케도 시식코너 찾아 "화과자" 잔뜩 먹어 주시고 탑승 기다리는데

저쪽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여자분들이 우리에게 오더니 하는말,

"혹시 티켓 보딩하면서 공항세 지불했어요?? 티켓에 공항세가 포함 안되어 있다고 공항세 내기전엔 절대

발권 안해준데요."

라고 이야기 하신다.

"어 저희는 그런말 없이 그냥 친절하게 해주시던데요."

하면서 대만 공항에서 마지막 진상을 부리러 카운터로 고고싱. 그런데 아까 수속직원은 간데없고 왕언니 인상을

풍기는 직원이 공항세 안내면 티켓 보딩 안해준다고 뻐팅긴다.

"자 봐라. 티켓에 써 있는 코드가 모두 동일한데 우리는 공항세를 안내고 이 사람들 한테는 공항세를 받냐?" 했더니

지들끼리 막 뭐라뭐라 하더니

"수속직원이어서 그랬다 실수였다. 하지만 니들은 이미 보딩패스 나왔으니까 우리 실수다. 그냥 가라.

하지만 이 여자 둘은 공항세 안 내면 보딩패스 안준다."


우리 둘은 수속직원의 얼굴이 떠올리며 "그녀는 천사였을거야"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두 여자분들은 눈물을 머금고 남은 달러를 싹싹 긁어 환전해서 공항세 내고 비행기 탑승.

나와 W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머금고 쾌재를 불렀다.

무사히 인천 공항 착륙.

이제 마지막 관문 인천 공항 검역소. 혹시나 대만 검역소에서 우리 이야기를 전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내심 마음을 졸였으나, 열감지 카메라에 지나갈때 나와 W군 모두 정상 판명. 패스!!

이로써 험난했던 한국으로의 귀국을 무사히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날 부터 밀려올 회사의 압밝, 그리고 비행기 티켓 자금 압밝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모든걸

잊어버리고 쉬고만 싶었다.

이렇게 힘들게 한국땅을 밟으니, 감회가 새롭더라. 악제가 끈임없이 계속되는 귀국길을 돌아보며 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없을거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해서 제발 1년 동안은

서로 주변에 알리지 말자고 약속했다. 너무 쪽팔려서 ㅠㅠ;; 1년째 되는 지금에서야 밝힐 수 있어 속시원하고

너무 바보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이 많은 여행이었고, W군과 술잔 기울이며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



사족. 다행히도 우리 둘은 대만 지진을 핑계로 항공편 결항 때문에 지연되었다는 구라로 난 회사에서

책상 안빼고 버텼고, W군은 최종 면접에서 합격했던 회사에 구라100단으로 연봉 협상에 성공했다.


혹시 저보다 더 잔인한 경험하신 분 있으시면

꼭 댓글 부탁드려요~

by nerd | 2007/12/28 17:31 | Travel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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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군 at 2007/12/28 18:06
어흑.... ㅠ.ㅠ 오나전 캐안습.
Commented by 레아라 at 2007/12/28 20:05
으윽... 완전 슬프군요.....
Commented by 오다리죠 at 2008/01/01 18:11
항공권 시간 확인 잘 못해서 비행기 놓친 사람 이야긴 말로만 들어봤는데-_-
Commented by nerd at 2008/01/01 19:25
-_-;; 할말이 없습니다. 에구 남사스러워라~
Commented by onizgga at 2008/01/02 12:33
ㅋㅋ 저의 어리버리함으로 두분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으나,,
당사자가 아닌 3자의 입장에서 글을 보니 그저 덤앤더머의 한장면을 보듯 즐겁습니다요. ^^;;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이었네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8/01/03 03:21
푸하하 꼬이려면 생각지 못한 데에서도 꼬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somma at 2008/01/03 21:21
사진속의 두 인물이 모두 아는 인물들 같은데... 넘 불쌍해 보인다.. ㅋㅋ
Commented by 양군 at 2008/01/03 23:49
나도. 국내에서라면 만만치않은 덤앤더머 사건이 있지요.... ㅋㅋ
Commented by somma at 2008/01/04 22:01
양군 / 망치질 조심~ ㅋㅋㅋㅋ
Commented by nerd at 2008/01/07 17:01
somma / 양군님의 망치질 에피소드는 뭐죠??
Commented by somma at 2008/01/08 20:55
양군한테 직접 물어봐........ 푸훗..
(양군 책상 뒤져보면 아직도 그 망치 들어있을껄?)
Commented by 양군 at 2008/01/14 15:53
somma / 그.. 그런건.. 함부로 발설 하심 안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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