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제주 여행] 둘째날 - 한라산 백록담 등반

평소에 산을 오르기보다 내려오는 길에 파전에 막걸리 한사발을 더 좋아하는 지라 명산을

등반해봐야 겠다는 생각은 간절하지 않았다. 이번 제주 한라산 등반도 별 기대없이 제주에

왔으니까 한번 가봐야 겠다는 내려오는 길에 꼭 파전에 막걸리 한사발 벌컥거리며 마셔야지

하는 생각으로 등반 계획을 잡았다. 삼순이도 한라산 정상을 찍었는데 나야 못하겠어하는 마음으로

무모한 산행을 감행했다.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라가는 정상 등반 코스는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 두 길이 있다고

한다. 올라가는 길은 성판악, 내려올 때는 관음사로 택하고 아침 일찍 나섰다. 한라산 올라간다고

하니 가게 아줌마가 먹을거 많이 싸가라고 하시길래 아주머니 너무 대놓고 열심히 장사하시네..

라고 생각하며 별로 생각도 없이 먹을 것을 주워 담았다.

성판악쪽에서 올라가는 코스는 비교적 완만한 코스이고 진달래밭 휴게소가 중간에 있어서 잠깐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고 한다. 해가 적당히 비춰주고 안개도 자욱하니 마치 혼자서 한라산 통째를

전세내어 등반하는 기분이었다.



저때만 해도 앞으로 어떤 난관이 닥칠지 전혀 모르고 신나게 IPOD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올라갔다. ( 얼만큼 올라가니 IPOD이 이유없이 꺼져 버렸다. 아마도 추운 날씨에 배터리가

맛이간 듯하다. ) 한 2시간 좀 지나 진달래밭 휴게소에 들렀다. 확실히 해발고도 1300M이상이라

찬기운이 느껴졌다. 휴게소 실내에 들어가서 김밥 1줄과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머지 2.3Km를

올라섰다. 등산로가 대부분 나무 계단이나 현무암으로 깔아놓은 돌계단이어서 등반하는데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상을 한 5-600m 남겨놓고 엄청난 나무 계단이 나타났다.

나무 계단 자체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닌 눈보라였다.

입고간 외투의 후드를 여태 한번도 안쓰고 모자만 하나 눌러썼는데 여기선 도저히 안될거 같더라.

그래서 추하지만 모자위에 외투의 후드를 덮어쓰고 눈, 코, 입만 열어두고 눈보라와 사투를 하면서

정상까지 한걸음 한걸음 올랐다.







드디어 정상 도착! 본래 날씨가 좋으면 요기서 백록담이 환하게 보이는 곳인데, 한라산이 날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백록담의 발톱도 못보고 정상에서 10분 머물다가 관음사 코스로 하산했다.



저 고드름(?)이 저 방향으로 붙어 있는걸 보면 정상에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한라산 정상에 올라가서 알게된 사실인데 내 똑딱이 디카가 영하의 날씨에는 작동을 안하더라

저 사진들도 입으로 불고 손으로 디카를 비벼가면서 어렵게 사진으로 남겼다. -_-;; 그래도 DSLR

(디질래)를 한라산 정상까지 메고 올라가는 것보다는 낫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에 눈발이 더 굵어지더니 슬슬 내려갈 길이 걱정되더라. 하산하는

관음사 코스는 올라왔던 길보다 험하고 고개를 여러번 넘어야 한다. 올라올때는 몇 킬로 남았다는

표지판이 빨리 빨리 나타나더니만 하산하는 길에는 내려와도 내려와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가 날도 흐리고 정상에서 조금 벗어나니 비로 바뀌어 눈바닥길 보다 훨씬 미끄럽더라.

산길에 혼자 내려가는데 까마귀 2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길동무를 해주는데 이건 뭐 -_-;; 위로가

전혀 안되더라. 그래도 중간 중간 쉬어가며 억지로 사왔던 귀중한 양식을 먹고 힘내서 내려왔음.

이거 오늘 모든 기상 악제를 다 겪고 내려가는구나. 다행히 내려가다 하산하는 몇분을 만나 함께

내려갔다. 관음사 코스로 올라왔으면 아마 정상에 올라가서 쓰러졌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면서 죽기살기로 내려갔다.

내려오는 분 중에 중국 사천성 소수 민족 언어 연구소에서 사시며 잠깐 일이 있어 한국에 들어오는

길에 제주에 들르셨다는 아저씨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한번 실크로드 따라

여행해보고 싶다고 하자 그분이 명함 주시며 티벳 들어가는 길에 성도에 한번 들르라고 하시더라.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뵐 수 있겠지... 생각하며 제주 시내 사우나에 들러 몸에 긴장 좀 풀어주시고

고소함과 느끼함의 극치 전복죽 한 그릇 사먹고 공항으로 고고싱.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도 한성항공 이용. 월요일 저녁 비행기 운임은 죽어도 할인 안되더라. 그냥

G-Market 쿠폰으로만 할인 받고서는 비행기 탑승. 비행기 타니 달랑 승객 6명.

김포까지 가는 비행 내내 난기류에 시달려 가뜩이나 작은 비행기로 "1시간 짜리 롤러 코스터"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도 승무원 언냐들과 목숨 걸고서 작은 항공기에서 일하는 인생의 애환을 들어주며

무사히 김포 공항 착륙. 집까지 오는데 다리가 후덜거려서 겨우 왔음.


교훈점 : 무모한 등반은 위험하다. 등반 코스가 길면 먹을게 남는 것이다.

우리말이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예전에 배웠던 지식은 거짓말이었다. -_-;;

by nerd | 2007/12/12 12:57 | Travel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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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밝은거울 at 2007/12/12 13:06
중력을 무시한 고드름 멋지네요.

한성항공언냐들;은 손님 말상대도 해주나봐요?
Commented by nerd at 2007/12/12 13:14
글게요. 롤러 코스터 타고 가면서 승무원 언냐들과 이야기하는 느낌 꽤 괜찮던데요.

자리가 많이 남아서 승무원 언냐들도 일반 좌석에 앉아 가시더라구요 ㅎㅎ
Commented by 밝은거울 at 2007/12/12 13:22
이미지 클럽이 연상되는 사람은 저뿐인가요? -_-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12/12 13:37
헛 고드름-
Commented by onizgga at 2007/12/12 13:53
ㅋㅋ 좋은(?) 경험 하셨네요. 목숨걸고 타는 1시간짜리 롤러코스터.. 대신 8등신 언니들과의 데이토또 있었으니 좋으셨던거죠? ^^

고드름의 포스가 엄청나네요. ㅎ;
Commented by wintry at 2007/12/14 08:55
한라산을 한번도 올라가 보질 않아 나름 로망이 있었어요. 근데 사진을 보니 아무래도 겨울은 피해야 할 듯 싶군요. ^^
Commented by SkyNautes at 2007/12/14 16:46
백록담이 안 보여서 너무 아쉬워요
전 제주도는 수학여행때 가봤는데 고딩때가면 뭐 다 그렇죠.
버스 안에서 잠만 자다가 와서 기억나는건 암것도 없습니다 -_-;
Commented by seyool at 2007/12/15 13:42
너무 멋져요~~
Commented by 굴돌 at 2008/01/07 01:14
오...뿌~연 숲길이 포쓰가 느껴지네요 >.<
Commented by nerd at 2008/01/07 13:43
굴돌 / 안개를 헤치며 올라가니 분위기가 묘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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